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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총풍사건의 진실

■ “장석중 고문 결정적 증거 찾았다”

98년 하반기 사회전반에 충격을 준 판문점 총격요청사건, 이른바 ‘총풍사건’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총풍사건의 핵심은 「장석중(대호차이나 대표)·오정은(전 청와대 행정관)·한성기(전진로그룹 고문)씨 등 3인방이 97년 12월10일 베이징에서 북한측 인사를 접촉, 대선결과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북한이 판문점에서 무력시위를 벌여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98년 10월 이 사건이 공개되자 온 나라는 떠들썩했고 배후세력으로 지목받은 한나라당 이회창총재 진영은 ‘총풍은 고문에 의한 조작극’이라며 역공에 나섰다.

그동안 총풍사건은 국정원(안기부)·검찰측과 총풍 3인방 사이에 “총격요청이 실패했다”는 주장과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만약 장석중·한성기씨에 대한 고문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총풍은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이 밝혀져 현정권의 도덕성은 큰 타격을 입게 될 전망이다.

그런데 최근 장석중씨에 대한 고문을 입증하는 증거가 발견돼 ‘총풍사건’은 일대 전기를 맞게 됐다. 국정원 수사관의 재판과정에서의 위증사실이 드러난것.

총풍사건은 실재했나

장석중씨는 총풍사건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안기부(국정원)가 특정인의 대권야욕을 위한 방편으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그러한 근거로 총풍사건이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총재가 된 98년 8월31일 다음날부터 수사가 진행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정원과 검찰은 총풍은 분명히 있었고 오정은씨의 지시에 의해 한성기씨가 북측에 판문점 총격을 요청하고 장적중씨가 그 중간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위 세사람이 97년 12월9일 총풍모의를 하고 다음날 중국 북경으로 가 북한측에 판문점 총격을 요망했다는 것.

이에 대해 장씨는 국정원과 검찰조서에는 모순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먼저 9일날 세사람이 총풍모의를 했다는 점에 대해 장씨는 자신은 서울 플라스틱조합에서 북한에 건네줄 비닐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고, 오정은씨는 이회창 후보의 부산집회 참석차 8일 부산에 내려가 이틀후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 또 한성기씨는 12월9일 새벽비행기로 부산에 내려갔다가 같은날 밤 비행기로 서울로 올라와 세사람이 함께 모일 시간조차 없어 ‘모의’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또 장씨는 총풍과 같은 엄청난 공작을 모의하려면 최소한 1∼2년 전부터 알고 지내고 치밀한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한성기씨와 만난 것은 불과 7일 정도이고 얘기를 나눈 시간도 7시간 정도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총풍공작이 가능하겠냐며 반박했다.

장석중씨 고문

장석중씨는 이회창씨가 한나라당 총재가 된 97년 8월31일 다음날부터 9월5일까지 한성기씨가, 9월5일부터 7일까지는 장씨가, 9월8일부터 오정은씨가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그에 대한 고문이 9월5일 밤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 국정원 수사관이 장씨에게 심문한 것은 이회창 총재 관련 부분, 이회성씨 관련 부분, 박관용 의원 관련 부분, 한나라당 관련 부분, 배후세력 추궁 등이었다.

그러나 장씨는 심문사항이 자신과 전혀 관계없고 알 수 없는 사안들이어서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러자 국정원 백모 실장의 구타가 가해져 왔다는 것. 그 뒤 고문기술자가 들어와 여러 고문기술 등을 설명하고는 주먹질을 하며 위협했다.

계속되는 고문에 장씨는 하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후에도 고문기술자와 여러명의 수사관들이 번갈아가며 장씨를 마구잡이로 패고 때려 왼쪽눈은 제대로 볼 수없고 다리에 마비증세가 나타났다.

고문은폐 시도

장석중씨는 고문 협박에 못이겨 국정원 수사관들이 요구하는데로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장씨가 풀려난 것은 9월7일 밤 10시경. 그러나 장씨를 풀어주려던 국정원 수사관들은 장씨의 몸에 난 상처를 의식, 뜨거운 물로 샤워를 시켰다. 고위 수사관은 장씨의 어혈을 풀기 위해 독한 술을 먹일 것을 지시했다.

장씨가 풀려나면서 오정은씨를 수사했던 김모 수사관과 고무신으로 장씨 눈주위를 때렸던 이모 수사관이 동행했다. 장씨의 집이 있는 서울 동대문 근처에 와서 수사관들은 장씨의 요구(집에 가고싶다는)에도 불구하고 밤늦은 식사를 하자고 요구했다. 그리고 김모씨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는 차를 급히 몰았다.

장씨와 수사관들은 밤 11시가 넘어 동대문 장안평 근처의 N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후 김모 수사관은 “수사의 연장”이라며 장씨와 2차(술마시는 것)를 갈 것을 강요했다. 이들이 함께 간 곳은 식당에서 가까운 J단란주점.

이들은 J에서 다음날 1시까지 술을 마신 뒤 헤어졌다. 수사관 이모씨는 장씨집까지 따라가 자신의 고문에 대해 거듭 사과하고 함께 울기까지 했다.

그러나 98년 10월 ‘총풍사건’이 터지면서 위의 상황은 전혀 다르게 변질됐다고 장씨는 주장했다. 국정원이 총풍사건을 발표하고 그 배후세력으로 이회창 총재를 의심하고, 이총재측은 ‘고문 조작’으로 반격을 하면서 문제가 됐다는 것.

이 총재측의 ‘고문 조작’에 국정원과 검찰은 “고문은 전혀없었다. 술집에 간 것도 장씨가 기분이 좋아 함께 간 것” 뿐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수사관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장씨와 수사관들이 H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며 주인 양모씨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증인 양씨는 본래 술을 마셨던 J단란주점 종업원이 아니라 장안평의 또다른 H술집 주인이었다.

장씨에 따르면 그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

고문증거 입증돼

하지만 수사관들의 재판과정 진술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98년 9월8일 J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신 사실을 입증하는 단서가 나타난 것. 당시 술값은 수사관 김모씨가 S사 카드로 계산하였는데 그것이 밝혀진 것.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장씨와 수사관이 술을 마신 곳은 지난해 재판 과정에서 수사관 이씨와 양모씨가 진술한 H술집이 아니었다.

결국 국정원 수사관은 고문사실을 감추기 위해(어혈 푸는 것) 술집에 갔던 사실을 은폐한 것이다. 또한 수사관 김모씨는 재판에서 H술집을 처음 간 곳이라고 하였지만 본지가 입수한 카드사용 내역에 의하면 김모씨와 J단란주점 사이에 여러번의 거래내역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김모씨가 “처음 갔다”“술집주인 양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진술한 것은 ‘거짓’임이 입증된 것. 바꿔말하면 국정원 수사관들의 고문수사가 있었고,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위증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H술집은 J단란주점 간판으로 바뀌어져 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또 하나의 반증인 셈이다.

박종진 기자 pjj@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