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문구멍으로 빼꼼히 내다보니 어리숙하게 생긴 집배원이 문 앞에 서있다.
“등기 왔습니다. 여기 사인 좀.”
언뜻 발송인을 보니 아무개다. 모르는 이름이다.
소포는 사절지 크기의 아담한 것이다.
부피도 작은 게 무슨 책이 들은 것 같다.
“옜소”
문을 닫고 소포를 ‘휙‘ 내 팽겨 친 후, 부산스럽게 방안으로 걸음을 옮긴다.
째깍 째깍 시계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참 일에 몰두하고 있는데, 또다시 초인종 소리가 울린다.
“딩동, 딩동, 딩동,”
귀찮아서 반응을 보이지 않으려는데 집요하게 울려 퍼진다.
“옘병할”
혀를 차며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문구멍으로 빼꼼히 내다본다.
웬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서있다.
굵은 뿔태안경이 유난히 어색하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지금 바쁩니다. 돌아 가시요.”
나는 문을 열지 않고 고함친다.
본새로 보아 틀림없이 잡상인일거라 단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밖의 남자가 심상찮은 목소리로 간촉한다.
“아주 위급한 일입니다. 이문 좀 어서 열어주세요.
선생의 신변에 관한 일입니다.”
” 아 일없다니까.”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재촉한다.
“선생이 오늘 괴한에게 살해 당합니다!”
순간 귀가 ‘솔깃‘한다.
“뭐라?”
“선생이 오늘 이 자택에서 괴한에게 살해 당할거란 말입니다! ”
하도 기가 막혀서 남자의 얼굴을 빼꼼히 주시하게 된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회개 망측한 헛소리를 나불대는 거요?”
“헛소리가 아닙니다. 예견입니다. ”
“예견이라? 지금 나에게 사이비 무당 같은 헛소릴 늘어놓겠단 거요?”
남자가 다짜고짜 문손잡이를 움켜잡고 흔들어댄다.
둔탁한 쇠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찔러댄다.
“뭐하는 짓이요?”
“선생이 살해되는 장면을 봤습니다.”
어이가 없는 소리가 연거푸 이어지자 이윽고 할말을 잃게 된다.
“선생이 이 집에서 괴한에게 참혹하게 살해당할거란 말입니다.
바로 오늘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돌아가시오. 허무맹랑한 헛소리 그만 읊어대고.”
정신 나간 미친 작자가 틀림없다고 판단하고 일언지하 등을 보이려는데,
뒤에서 초인종소리가 연거푸 귀청을 찔러댄다.
“딩동, 딩동, 딩동,”
“도대체 당신 왜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거야? ”
“이 문부터 먼저 열어주시죠. 들어가서 자세한 얘길 드리겠습니다.”
마지못해 문의 걸쇠를 풀어준다.
풀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남자가 집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연신 불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안절부절 호들갑을 떨어댄다.
나는 그를 본능적으로 경계하게 된다.
“전, 정신과 의사입니다.”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내민다. 그의 말이 거짓말은 아니였다.
그러나 이런 명함 쪼가리 하나 위조 하는게 무슨 대수겠는가?
뭔가 수상쩍은 남자가 틀림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오만불손한 행동이요?”
“최면요법에 대해 좀 아십니까?”
’?’
“정신과에선 우울증 치료를 위해 환자에게 최면요법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최면을 걸면 그 사람의 전생을 볼 수 있습니다.
간혹 지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미래까지 투시하곤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스트라다무스’나 성경의 ‘요한’같은 예언가들이 그런 범주죠.”
갑자기 말을 뚝 끊은 남자가 심각하게 미간을 일그린다.
“선생님이 살해되는 장면이 투시되었습니다.
바로 얼마전, 최면치료 중에 말입니다.
환자에게 최면치료를 하던 중,
느닷없이 환자가 선생의 최후를 예지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죽는 장면이 예지되었다? 안면부지의 환자에게?”
“그렇습니다.
그 환자는 최면 중에 간혹 생판모르는 타인의 미래를 투시할때가 있습니다.
우리로선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때문에 그 환자에겐 유독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테면 21c 노스트라다무스의 부활이라 할까요. 아니나 다를까,
환자의 예지는 조사해보니, 적중률이 무려 100%입니다.
틀린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겁니다.
물론 아직 정식적으로 학계에 통보되진 않았습니다만. ”
『그럴테지 지금 하는 말 자체가 새빨간 거짓부렁 일 테니』
난 속으로 이렇게 중얼대며 더욱더 그를 미심쩍게 쳐다본다.
“그 환자가 말했습니다. 누군가 위험하다고,
괴한이 침입해 집주인을 사정없이 칼로
찔러대고 있다고,.. ”
난 하도 어이가 없어 한숨을 토했다.
“환자의 말을 추슬러 보니 바로 이곳,
즉 선생이 살고 있는 이 아파트의 이 호수였습니다.
때문에 전 이곳으로 부랴부랴 달려온 겁니다.
그 환자의 예견은 현실과 놀랍도록 적중한
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저이기에 말입니다.”
말을 맺은 남자가 어울리지 않는 뿔태안경을 한번 위로 치켜 올린 후,
심각한 표정으로 날 응시한다.
“얘기 끝났소?”
“선생님, 경솔하게 넘겨버리지 마세요.
이건 선생의 생명이 걸려있는 위급한 문젭니다.”
“이보쇼, 당신. 정신과 치료를 많이 하다보니 정신이 좀 어떻게 된 거 아니요?”
남자가 좀 언짢은 표정으로 날 쏘아본다.
뭔가 주춤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난 다시한번 매몰차게 말을 뱉는다.
“보시오. 의사양반. 쓸데없는 시간낭비 말고 환자치료에나 전념하시오.
그 허무맹랑한 소릴 지금 나보고 믿으란 거요?
내가 그렇게 아둔한 사람으로 보이요!”
“그렇게 받아들이신다니 정말 할말 없군요.”
” 할말 없으면 당장 사라져 주시요.”
내가 윽박지르자 의사가 못내 아쉬운 듯 푸념을 토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나도 말없이 일어나 현관문을 조용히 열어주며 그의 퇴장을 재촉했다.
“정말 유감입니다. 선생.”
“나 역시 유감이오.”
남자가 신발을 신는다. 나는 물끄러니 그를 바라본다.
그런데 신을 신다 말고,
남자가 난데없이 내 쪽을 올려다보며 묘하게 눈을 번뜩인다.
‘이런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구나’ 싶어 움찔 방어태세를 취하려는데,
남자의 입에서 엉뚱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선생, 혹시 선생 집에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이 있지 않나요?”
나는 두서없이 일축한다.
“없소이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는 물음푤 붙이기가 무섭게 번뜩이는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뒤이어, 거실 벽의 한쪽에 표구된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 저기 있지 않습니까?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 내가 신경쓸일이 아니요. 우리 집사람이 가져와 걸은거요.”
“보세요. 그 환자의 예지는 틀림없이 적중합니다.
선생의 아파트 명칭, 호실, 심지어
저 모사품들까지도 꿰뚫고 있지 않습니다.
가령, 고흐의 ‘해바라기’ 뿐 아니라 모네의
‘중국여인’도 표구되어 있다고 저에게 피력했었습니다.
저기 걸려 있는 그대로 말입니다.”
그는 고흐의 액자가 표구되어있는 바로 옆의 그림을 손가락으로
당차게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이래도 제 얘기가 허무맹랑하다고 묵살하실 겁니까?
지금 선생의 상황은 매우 급박합니다. 제발 제 말대로 따라주세요.”
난 잠깐 동요하게 된다. 그의 말에 은근히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있다.
때문에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이렇게 멀쩡하지 않소.
그렇다면 그 예견은 애초부터 틀려 먹었다는 반증이 아니요?”
“아닙니다. 틀린게 아닙니다.
아마 조금 뒤에 사건이 발생할 겁니다. 그녀가 예견한 저
모사품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예견은 적중했습니다.
시간이 급박합니다.
어서 이곳을 피해야 합니다.”
난 잠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적어도 저 모사품이 이집에 있다는 걸 간파할수 있는 방법은 추호도 없었다.
미리 봐두지 않는 한 말이다…….잠깐….. 미리……..봐둔 …..다…
앗, 그렇다.
이런, 감쪽같이 속을 뻔 했다….
난 그에게 공박하듯 내뱉는다.
“이런, 잘도 날 속이려 수작을 부리는군!
당신, 당초 집에 들어와 자꾸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수상쩍은 행동을 보였던 와중에 저 그림들을 은근슬쩍 기억해 뒀단 걸
내가 모를 줄 아는가!”
놈이 묵묵부답으로 날 노려본다.
아마도 내 예상이 적중했나 보다.
뭔가 불안해 하는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다.
그렇다.
저 어울리지도 않는 뿔태안경으로 얼굴을 가리려 했을때 부터 수상했다.
아마도 음흉한 속셈이 깔려 있는 작자가 틀림없다.
절대 말려들면 안 된다.
“선생, 정말 말이 안 통하는 분이군요. 제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내가 알 턱이 있나! 무슨 엉큼한 속셈을 숨기고 있을지,
아무튼, 그 안 어울리는
뿔태안경부터가 난 맘에 안 들어 !”
그는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토했다.
“나, 참, 정말 할말이 없군요.”
“나 역시 할말 없긴 매한가지야.
그러니 제발 내 귀중한 시간 그만 뺏고 당장 사라져!”
그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연신 머리를 저었다.
그리곤 등을 돌려 문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놈의 퇴장을 재촉하기 위해 놈을 시종일관 을씨년스럽게 노려보았다.
그런데 다음순간,
놈이 갑자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호주머니에서 뭔가 묵직한 것을 꺼내더니 느닷없이
내 머리를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난 무방비 상태로 넋 놓고 놈의 일격탄을 그대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통증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풀썩 거꾸러질수 밖에 없었다.
『 빌, 빌어먹을, 애초에…..
……문을 열어주지 말것을… 』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이다.
정신은 일순 몽롱해지더니 이윽고 빠르게 혼미해져 갔다.
먼 발치에서 놈이 뭐라고 중얼거리는 소리만 나즉히 귓가에 맴돌 뿐이다.
/
매몰차게 몸이 흔들린다. 누군가 날 무식하게 흔들어 깨우고 있는게 분명하다.
눈을 뜨니 요란하게 울려대는 싸이렌 소리에 귀가 왕왕거릴 정도다.
난 미친 듯이 사방을 둘러본다.
이윽고 혼란스런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포착된다.
바로 놈이다.
『머린 좀 괜찮습니까?』
놈이 능글맞게 웃으며 날 위로하는 척 가증스러운 위선을 연기한다.
『선생, 제가 선생의 정체를 언제 알았는지 아십니까?』
난 침묵한다. 놈의 능청스런 얼굴에 침이라도 연신 뱉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바로 선생의 집에 ‘고흐’의 해바라기 모사품이 있지 않냐고 물어보던 순간이였습니다.
선생은 없다고 딱잘라 일축했죠. 전 순간 의아했습니다. 뒤에 선생이 구차하게 ‘집사람이
걸어놓아서 신경쓸일이 아니다’라고 연유를 달았지만 저에겐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모사품이라고 해도 한두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작품의 이름까지 모를수가
있나? 하물며 집주인이 말입니다….』
숨을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격분이 치솟는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허파가 타들어가는
느낌이다…….굴욕적이다. 수치스럽다. 놈을 얼굴이라도 후련하게 갈겨줬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러나 그럴수 없다.
내 두손은 수갑으로 단단히 포박되어 있기에…
빌어먹을…..
『그래서 전 한번 실험을 해봤습니다.
고흐의 그림 바로 옆에 걸려있던 모네의 ‘일본여인’을 은근슬쩍 ‘중국여인’이라고 바꿔 말하며
짐짓 선생의 반응을 주시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선생은 여전히 눈칠 못채더군요.
전 그때 비로소 확신했습니다.
선생이 이집의 주인이 아니란 것을, 그럼 선생은 누굴까요?
해답은 하납니다. 예견이 100% 적중률을 보인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까요…….
즉, 제가 한발 늦었다는 겁니다.
집주인은 이미 괴한에게 살해당했다는 겁니다.
바로 당신에게 말입니다.』
제가 아는 한 일본인 친구가 제게 보내준 글입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는 친구인데, 지난 여름 이 글을 가지고 일본어 강독 수업자료로 썼다는 군요. 일본어 원문이 함께 있는 hwp 파일을 첨부합니다.
출처는: http://www.iam-t.jp/HIRAI/
히라이 노리오 씨는 1997년1월에 돌아가셨는데, 1급 플랜트 배관 기능사, 원자력 발전 사고 조사 국민 회의 고문, 원자력 발전 방사능 노출 노동자 구제 센터 대표, 호쿠리쿠 전력 노토(현·시가) 원자력 발전 금지 재판 원고 특별 보좌인, 토후쿠 전력 온나가와 원자력 발전 금지 재판 원고 특별 보좌인, 후쿠시마 제2원자력 발전3호기운전금지 소송 원고 증인이었답니다. “원자력 발전 방사능 노출 노동자 구제 센터”는 현재 없어졌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원자력 발전소가 어떤 것인지 알려 드리죠
히라이 노리오
저는 원전 반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20여 년간, 원자력 발전소(以下 원전)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입니다. 원전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던가, 위험하다던가, 안전하다던가하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지만, 저는 ‘원전의 실상은 이렇습니다’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원전 내부의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으신다면, 원전이 여러분이 생각하고 계시는 것과는 다르게, 매일 피폭자가 나오고, 엄청난 차별을 유발하는 곳이란 것을 잘 알게 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도 많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끝까지 읽고 나서, 원전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께서 직접 생각해 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원전에 대해서 설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저처럼 시공과 건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장을 모르고서는, 원전의 참 모습은 알 수가 없겠지요.
저는 플랜트(plant;제조공장, 공장설비), 대형화학제조공장 등의 배관 전문입니다. 20대 후반 즈음, 일본에 원전을 세운다는 미명 하에 스카웃되어, 원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일개 작업원이었다면, 몇 십 년을 일해도 모르겠지만, 현장감독으로서 오랜 기간 일 해왔기에, 원전 내부의 일 대부분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작년(1995년) 1월 17일, 한신 대참사가 일어나, 국민들 사이에 ‘지진으로 원전이 무너지거나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원전은 지진에 정말로 괜찮은 것인가 하는 목소리였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절대로 괜찮을 리가 없습니다. 정부나 전력회사는, 내진 설계를 고려하여,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되어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실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 지진이 일어난 다음 날, 저는 고베에 가보고는,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원전과 공통점이 많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설령, 신칸센 선로가 떨어진다던가, 고속도로가 끊어지리라고는, 그렇게 되기 전까지 국민의 누구 하나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보통, 원전이나 신칸센, 고속도로 등은 관청검사에 의해, 혹독한 검사가 행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칸센의 교각부 콘크리트 안에는 거푸집 나무 조각이 들어가 있었고, 고속도로 지주의 철골 용접은 상태 불량이었습니다. 언뜻 보면, 용접되어 있는 듯이 보여도, 용접이 되어있지 않아서, 용접부가 전부 떨어져 있었습니다.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 근본적인 원인은 오로지 도면상의 설계에만 중점을 두고, 현장에서의 시공,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비단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지라도, 이러한 사고는 발생할 것입니다.
원전에서도, 원자로 내부에 철사가 들어가 있었다던가, 배관 내부에 도구나 공구를 넣은 채로 배관을 연결해버린다던가, 소위 말하는 사람의 실수로 인한 사고, 인재(人災 ; Human error)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한 사고는 현장에 전문 기술자가 부족하고, 아무리 설계가 훌륭하더라도, 설계한 대로 건설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도면 상의 설계에 대한 논의는, 최고의 기량을 가진 전문 기술자가 시공을 맡을 것이라는 절대 조건이 붙습니다. 하지만, 실제 원전을 건설하는 사람이 어떤 기량을 가진 사람인가,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라는 의논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원전도, 건설현장도, 작업자에서 검사관까지 모두 비전문가에 의해 건설, 제작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에, 원전이나 신칸센, 고속도로에서 언제 대형 사고가 터지더라도 신기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일본 원전은 설계도 우수하고, 이중, 삼중의 다중보호를 받고 있어서, 어디에서 고장이 발생해도 확실히 멈추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설계 단계까지의 이야기입니다. 시공, 건설 단계에서 이상이 생깁니다.
가령, 자신의 집을 세울 때, 유명한 일급 건축사에게 설계를 부탁하더라도, 목수나 미장이의 실력이 좋지 않다면, 비가 세고, 바람이 들어오거나 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집이 바로 일본의 원전입니다.
십여 년 전 까지는, 현장작업에 보신(?心;봉심)이라 부르던 전문 기술자, 현장의 젊은 감독자 이상의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반장으로서 반드시 있었습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 사고나 하자가 발생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사고의 두려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0년 쯤 전부터, 현장에 전문가가 사라졌습니다. 비전문가들을 경험 불문이라는 형태로 모집하고 있습니다. 비전문가인 사람들은 사고의 무서움을 모르며, 어떤 것이 부실 공사인지, 어떤 것이 하자인지도 전혀 모르고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현재 원전의 현실입니다.
예를 들면,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발전소에서는, 원자로에 철사를 빠뜨린 채 운전을 하고 있어, 조금만 잘못해도 세계를 휩쓸 대형 사고가 일어날지도 모를 상황입니다. 저는 철사를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의 대형 사고로 이어질지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후 된 원전도 위험하지만, 새로 지은 원전도 비전문가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현장에 전문 기술자가 줄어들면서, 비전문가들도 건설, 제작을 할 수 있도록, 공사 과정이 설명서(manual)화되었습니다. 설명서화라 함은, 도면을 보며 건설을 하는 것이 아닌, 공장에서 어느 정도 조립된 부품을 가져와서, 현장에서 1번이면 1번, 2번이면 2번 하는 식으로, 그저 나무 블럭을 쌓아 올리듯 짜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조립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도, 사고나 고장이 빈번히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또한, 원전에는 방사능 피폭 문제가 있기 때문에, 후계자를 양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원전의 작업 현장은 어둡고 더우며, 보호 마스크도 쓰고 있어서, 상호간에 대화를 나누는 것도 어려운 곳이라서, 손짓발짓을 이용해야 합니다. 이래서는 제대로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른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연간 방사선 허용치에 먼저 이르러,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비전문가라도 좋다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예를 들어, 용접 전문 기술자라면, 눈이 쉬 약해집니다. 30세를 넘기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고, 세밀한 작업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밀한 작업이 많은 정유 공장 등에서는 쓸모가 없게 되기 때문에, 그렇다면, 일당이 낮더라도, 원전이라도 갈까라고 하는 식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이 뭔가 오해를 해서, 원전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설비라고 생각하고 계실런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그런 고급 설비가 아닙니다.
그래서 비전문가에 의해 건설된, 이 원전이라는 것은 이제 정말 처치 곤란한 것이 되었습니다.
원전을 만드는 전문 기술자가 없더라도, 검사를 확실히 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검사 체계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그저 완성된 것을 보는 것이 일본의 검사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검사는 시공 과정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검사관이 용접이면 용접을, ‘그게 아니지. 잘 봐요. 이렇게 하는 거지.’라고 스스로 실연(實演)해서 보여줄 기량이 없다면, 진정한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한 기량이 없는 검사관이 착실한 검사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건설사나 시공주의 설명을 듣고, 서류만 갖추어져 있으면 합격을 시키는, 이것이 현재의 관청 검사의 실태입니다.
원전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던 때, 운전관리 전문관을 각 원전에 두도록 하는 조항이 내각회의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운전관리 전문관은 원전의 신설, 정기점검 후의 운전 허가를 내주는 공무원입니다. 저도 그 공무원이 비전문가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심각한 상황인 줄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해준 것은, 미토에서 강연을 하던 중, 강연장에서 ‘실은 부끄럽습니다만, 정말 비전문가입니다.’라며 과학기술청 소속이라고 확실히 이름을 밝히고 발언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 직장의 직원은, 행여라도 피폭 될까봐 절대로 현장에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때마침 행정개혁으로 농수성 공무원 인원이 남게 되어, 바로 전 날까지 양봉 지도를 하던 사람과 방어 치어의 양식을 지도하던 사람도, 다음 날부터 전문검사관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원전의 전문검사관으로서 운전허가를 내주었습니다. 미하마 원전에 있던 전문관은 3개월 전까지, 쌀 검사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라며 그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이러한 철저히 문외한인 비전문가가 내준 원전의 운전허가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에서, 긴급원자로냉각장치(ECCS)가 가동되었던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요미우리 신문에 ‘현지전문관 상황 파악 전혀 못해’라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그 당사자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원전에서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다음 날 신문을 보고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 전문관이 아무 것도 몰랐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전력 회사 사람들은 전문관이 생무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화재 현장과 같은 소요(騷擾) 속에서, 어린아이 가르치듯, 하나하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그 사람을 현장에 부르지 않고 방치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런 무책임한 사람 밑에 원자력검사협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이 협회라는 것은 통산성을 정년퇴임한 사람들이 명예직으로 다니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한 문외한들이지요. 이들이 원전 공사의 거의 모든 검사 권한을 갖고 있어서, 이들의 승인이 나지 않으면 일을 진행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검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검사라고 해도 그저 눈으로 확인하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막대한 권한이 있습니다. 이 협회 산하에 전력회사가 있고, 그 밑에 원자로 제작사인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가 있습니다. 저는 히타치에 있었습니다만, 이 제작사 아래에 건설 회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작사를 관리하는 사람도 비전문가, 일을 맡길 건설회사도 대부분 비전문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전 사고가 일어나도 전력회사, 혹은 제작사가 아니라면 상세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당시부터, 일을 그만둔 지금까지도,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낙하산 인사나, 특수 법인이 아닌, 진정한 제삼자적인 기관, 통산성-은 원자력 발전소를 추진하고 있는 부서니까요-같은 곳들과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기관을 신설하여, 그 기관이 검사를 하도록 하는 겁니다. 그리고 검사관은 배관 등의 경험을 쌓은 사람, 밑바닥 현장에서부터 기술 경험을 쌓은 전문 기술자가 검사와 지도를 행한다면, 용접 불량이나 부실 공사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줄기차게 말해 왔습니다만,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일본의 원전 행정은,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한신 대지진 참사 후, 서둘러 일본 내의 원전의 내진설계를 재점검해서, 그 결과를 9월에 발표했습니다만, ‘어느 원전도, 그 어떤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괜찮다’는 어이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관여한 초기 원전에서는, 지진에 대한 진지한 설계상의 고려는 없었습니다. 1993년, 오나가와 원전 1호기가 진도 4 정도의 지진으로 인해 출력이 급상승하여, 자동 정지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사고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이 원전은 1984년에, 진도 5에서 멈추도록 공사를 했지만, 진도 5가 아니었음에도 멈추어 버린 것입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고속도로를 운전 하던 중,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급제동이 걸려서 멈춘 것에 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일은, 도호쿠 전력이 밝힌 것처럼, 멈춰서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진도 5에서 멈추도록 설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4에서 멈추었다는 것은, 진도 5의 지진에는 멈추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여러 가지가 설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진으로 오작동을 일으켜 멈추었던 원전은, 1987년 후쿠시마 원전도 있지만, 동일한 형태의 원전이 전국에 10기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진과 원전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상당히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닌가요?
원전은 1년 정도 운전하면, 반드시 멈추고 검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을 정기검사, 줄여서 정검이라고 합니다. 원자로에는 70기압이나, 150기압의 실로 엄청난 압력이 작용하고 있고, 배관 내부로는 물-이라 해도 섭씨 300도로 가열된 물입니다만-과 수증기가 엄청난 기세로 통과하기 때문에, 배관의 두께가 절반 정도로 얇아진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배관과 밸브를 정기검사에서 어떻게 해서든 교체해야 하지만, 이 작업에는 반드시 피폭의 위험이 따릅니다.
원전은 한 번 가동하면, 내부에는 방사능, 방사선이 가득하게 되기 때문에, 원전 내부에서 사람이 방사선을 맞으며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현장으로 갈 때는, 자신의 옷을 전부 벗고,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갑니다. 방호복이라고 하면, 방사능으로부터 우리의 몸을 보호하는 옷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경보기는 방호복 안에 입는 조끼에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즉, 방호복은 방사선을 밖으로 가져 나갈 수 없게 하는 단순한 작업복에 불과합니다.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방사선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작업을 끝마치고 밖에 나올 때는, 속옷 한 장까지도 피폭되었는지의 여부를 검사합니다. 신체 표면에 방사능 물질이 묻는, 이른바 외부 피폭이라면, 사워를 하면 대부분 씻겨 나가기 때문에, 방사능 수치가 0이 될 때까지 철저히 씻고 나서야, 겨우 나올 수 있습니다.
또, 안전화라고 해서, 구비되어 있는 신발로 갈아 신게 되는데, 이 구두 역시, 자신의 발에 딱 맞는 것은 없기 때문에, 중요한 작업화가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방사능을 흡입하지 않도록 전면 마스크를 씁니다. 이런 모습으로 현장에 들어가서, 방사능 걱정을 하면서 일을 하는 형국이니, 실제로 원전 내에서 좋은 일자리는 결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직장과는 전혀 다르지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 95%이상이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농부나 어부들이 일거리가 없는 겨울철 등에 일을 합니다. 좋지 않은 말이지만, 이른바 장돌뱅이지요. 그런 무경험자들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볼트를 나사로 조이는 작업을 할 때, ‘대각선으로 조이세요. 안 그러면 새버립니다’라고 가르쳐줘도, 작업하는 현장은 방사선 관리구역이라서, 방사능이 가득한 최악의 상황입니다. 작업현장에 들어갈 때 경보계를 차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현장은 장소에 따라서 방사선량이 다르기 때문에, 작업 가능한 시간이 달라집니다. 1분 1초를 다투는 곳이지요.
현장에 들어가기 전, 그날의 작업과 시간, 시간이라 함은 그 날 맞아도 괜찮은 방사선량으로 시간이 정해지는 것인데, 현장에서 20분간 작업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20분이 지나면 경보계가 울립니다. 그래서 ‘경보계가 울리면 현장에서 나오세요’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현장에는 시계가 없습니다. 시계를 차고 들어가면, 시계가 방사능으로 오염되기 때문에 시계는 풀어 놓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현장으로 갑니다.
현장에서는 볼트와 너트를 조이면서도, 10분 정도 지났으려나, 15분 지났나하며 머리로는 강박적으로 시간 생각만 하게 됩니다. 경보계가 울리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경보계에서는 큰소리의 경보음이 나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사람은 그 신호가 울리면,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질 정도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것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습니다. 경보음이 울리면, X-ray(뢴트겐선)라면 한 번에 몇 십장을 찍은 것에 해당하는 방사선량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너트를 대각선으로 조이세요라고 말해도, 지시 받은 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조이기만 하면 되지.. 하는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자,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겨울에 정검공사를 할 때가 많지만, 정기검사가 끝나면, 바다로 방사능 물질을 포함한 물 몇 십 톤 분량이 방류됩니다. 분명히 말하건데, 지금 현재 일본 열도에서 잡히는 어류 중,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어류는 거의 없습니다. 일본 바다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을 무단방류하는 것은 정기검사를 앞둔 시기뿐만이 아닙니다. 원전은 엄청난 열을 뿜어내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해수를 이용하여 냉각을 시키고, 그 물을 바다에 버리는데, 바로 이 물이 방사능 물질을 포함한 물로, 그 양만 해도 1분에 몇 십 톤에 이릅니다.
원전의 사고가 있어도 자치단체 등에서 부랴부랴 안전선언을 발표하고, 전력회사는 그 보다 한술 더 떠서 사건을 은폐하려 합니다. 게다가, 국민 대부분도 이런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일본의 바다는 지금도 오염되고 있습니다.
보호복에는 방사성 물질이 가득 붙어 있어서, 일단 물로 세척을 하고, 전부 바다로 흘려보냅니다. 배수구에서 방사선량을 측정해보니, 수치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이런 장소에서 어류 양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안전한 먹거리를 찾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실도 알고, 원전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이대로라면 전부 방사능에 오염되고 말겁니다.
몇 년전, 이시가와현 시카 원전의 가동금지재판에 대한 보고회에서, 80세 가까이 된 행상을 하고 있다는 할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껏, 원전이라는 걸 몰랐어요. 오늘 다시마랑 미역을 단골집에 가져갔더니, 그 집 안주인에게서 ‘미안하지만 이제 안 사요. 오늘로 끝이네요. 시카 원전이 가동을 시작해서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원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비로소 원전이라는 것을 실감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나요.’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습니다. 어려분이 모르는 사이에 일본의 바다는 계속 방사능에 오염되고 있습니다.
원전 건물 내부는, 모든 것들이 방사성 물질로 변해 버립니다. 모든 것들이 방사성 물질이 되어, 방사선을 방출합니다. 아무리 두꺼운 철판이라도 방사선은 꿰뚫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신체 외부로부터 받게 되는 외부 피폭도 두렵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내부 피폭입니다.
먼지,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는 티끌과 먼지. 원전 내부에서는 이런 먼지가 방사능에 노출되어, 방사성 물질 상태로 날아다닙니다. 이러한 방사능에 노출된 먼지가 입이나 코로 들어가면, 그것이 내부 피폭이 됩니다. 원전의 작업 중 정리정돈, 청소가 내부 피폭을 당하기 가장 쉬운 일입니다만, 신체 내부에서 방사선에 노출되는 내부 피폭이 외부 피폭보다 훨씬 위험합니다. 신체 내부에서 직접 방사선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신체 내부로 들어간 방사능은, 3일 정도면 땀이나 소변으로 배출된다고 하지만, 3일이라면 그 3일 동안 방사능을 몸 안에 두고 있는 겁니다. 또, 몸 밖으로 배출된다고 해도, 인간이 마음대로 정해놓은 기준이기 때문에, 절대로 방사능 물질이 전부 배출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극소량이라도, 신체 내부에 축적되기 때문입니다.
원전 견학을 했던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일반인이 견학 할 수 있는 곳은, 상당히 깨끗해서, 직원도 ‘깨끗하죠’라고 자랑하듯 말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깨끗이 해 두지 않으면 방사성 분진이 날려서 위험하니까요.
저는 그 내부피폭을 백 회 이상이 당해서, 암으로 발전 되었습니다. 암 선고를 받던 때, 정말로 죽는 것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어머니께서 항상 말씀 하시던 ‘죽는 것보다 더 큰일은 없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 죽기 전에 뭐라도 해보자. 원전에 대해서, 내가 아는 모든 걸 명백히 밝히자고 생각했습니다.
방사능이라는 물질은 체내에 축적됩니다. 아무리 소량이라도 10년이라면 10년분이 축적됩니다. 이것이 무섭다는 겁니다. 일본의 방사선 관리는, 연간 5000 mRem(1 mSv = 100 mRem : 흉부 X-ray 사진 1회 촬영 = 30 mRem : 연간평균방사선량 = 240 mRem)을 준수하면 된다, 그것을 넘지만 않으면 된다는 자세입니다.
예를 들면, 정기검사공사라면, 3개월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나누면 하루 분의 허용방사선량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방사선량이 높은 곳에서는, 하루에 길어야 5분에서 7분 정도의 작업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전혀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틀 분량이나 일주일 분을 한 번에 맞으며 작업을 시킵니다. 이런 방법을 쓰면 안 되지만, 그래야 10 분이나 20 분 정도의 작업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백혈병이나 암이 발병할 수 있다는 것을 작업자에게 고지한다면 좋겠지만… 전력회사는 이런 사실은 전혀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가동 중인 원전에서, 기계에 붙어있는 커다란 너트 하나가 풀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가동 중인 원전의 방사능은 정말 엄청난 것이라, 그 너트 하나를 조이는 데에 30명을 준비시켰습니다. 한 줄로 세워서, 신호와 함께 7 m 정도 앞에 있는 너트까지 뛰어갑니다. 가서, 1, 2, 3 하고 헤아리기만 해도 이미 경보계가 울립니다. 안쪽까지 뛰어 가서, 너트를 조일 스패너를 찾게 된다면, 벌써 끝난 겁니다. 너트를 조금 조이기만 하면 되는 일에도 160인분, 금액으로는 400만 엔 정도가 소요됩니다.
왜 원전을 멈추고 수리하지 않는가를 의문스럽게 생각하시겠지만, 원전을 하루 멈추면, 수억 엔의 손실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전력회사는 가능한 한 멈추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방사능은 엄청나게 위험한 물질이지만, 기업은 역시 사람 목숨보다 돈을 중요시하니까요.
원전과 같은, 방사능에 관련된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방사선 종사자라고 합니다. 일본의 방사선 종사자는 현재까지 약 27만 명이고, 그 대부분이 원전 작업자였습니다. 지금도 9만 명 정도가 원전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년 1회 행하는 원전 정검 공사 등을, 매일 피폭당하면서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전에서 처음으로 일하게 될 작업자들에 대해서, 방사선 관리교육을 약 다섯 시간에 걸쳐 실시합니다. 이 교육의 최대 목적은, 불안감의 해소입니다. 원전이 위험하다고는 절대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국가의 최대방사선허용수치로 관리를 하고 있어, 절대로 안전하니 안심하고 일하세요, 세간에 원전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방사능이 암이나 백혈병을 유발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국가에서 정한 것을 지키면 절대 안전합니다라고, 다섯 시간에 걸쳐서 세뇌를 시킵니다.
이러한 ‘원전은 안전하다’라는 세뇌를, 전력회사는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유명인을 불러 강연회를 연다거나,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서클 중 하나로 요리 교실을 연다거나, 멋지게 컬러 인쇄된 전단지를 신문에 끼워 넣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사고가 나서, 조금 불안해졌다 하더라도, 그러한 안전 선전물에 의해 곧바로 세뇌되어, ‘원전이 없으면, 전기가 없어져서 곤란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저 자신이 20년 가까이, 현장 책임자로서, 근무자들에게 옴 진리교의 아사하라 교주 이상의 마인드 컨트롤, 즉 세뇌교육을 해 왔습니다. 몇 명이나 죽음으로 내몰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로부터 현장 근무자들은 불안해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만, 방사능의 위험성이나 피폭 문제는 절대 인식 못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태반의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몸 상태가 나빠져도, 그것이 원전 탓이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작업자 전원이 매일 피폭을 당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본인이나 외부에 알리지 않도록 처리하는가가 책임자의 일입니다. 본인이나 외부에 피폭 문제가 새어 나간다면, 현장 책임자로서 실격입니다. 이것이 원전 현장인 것입니다.
저는 이런 일을 장기간 해오면서, 하루하루 견뎌 내기 힘든 날들이 많아서, 밤에는 술의 힘을 빌렸고, 주량은 나날이 늘어갔습니다. 그런 일을 자행한 내 자신에게 자문(自問)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대체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런 거짓뿐인 일상을 지내지 않으면 안되는 건가. 정신을 차려보니, 20년 동안의 원전 노동으로, 제 몸도 피폭되어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습니다.
또, 도쿄 전력 후쿠시마 원전에서 현장 작업원이 그라인더(연삭기;硏削機)에 이마를 스치는, 중상을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피가 솓구쳐 나오고, 일각을 다투는 큰 부상이었기 때문에, 바로 구급차를 불러 이송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부상자는 방사능 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전력회사도 경황이 없어서, 방호복을 벗긴다거나, 몸을 씻기는 등의 세척을 하지 않았습니다. 구급대원에게도 방사능 오염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부상자는 방사능 세척도 하지 않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부상자를 만졌던 구급대원이 오염되었고, 구급차도 오염되고, 의사도 간호사도, 그 간호사가 만진 다른 환자도 오염되고, 그 환자가 밖으로 나가서, 오염이 더욱 확산된다는 식으로 소문이 퍼져서, 마을이 패닉상태에 이를 정도의 엄청난 사태로 발전되었습니다. 모두가 중상을 입어 심하게 피를 흘리는 환자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내겠다고 필사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에-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그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것 따위는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피폭자 한 사람 만으로도 이렇게 엄청난 것입니다. 가령 대형 사고가 발생하여 다수의 주민이 방사능에 오염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요. 상상이 가십니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이 나라 국민 모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께서 모르고 있던, 무관심 하던, 일본의 원전은 깜짝 놀랄 대형 사고를 간간히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 사고는 스리마일 섬(Three mile Island, Pennsylvania, US ; 1979.3.28 원전 냉각계 시설 고장으로 인한 방사능물질유출사고 발생, 약 200만명 피폭)이나 체르노빌(Chernobyl, 現 Ukraine ; 1986.4.23 원전 정기 검사 전 실시한 실험 도중 폭발.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에 필적할 만한 대형 사고입니다. 1989년에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 2원전에서 재순환 펌프가 산산조각난 사고도 세계 최초로 발생한 사고입니다.
그리고 1991년 2월, 간사이 전력 미하마 원전에서 세관이 파손, 절단 되었던 사고는, 방사능 물질이 직접 대기 중이나 바다로 대량 유출되었던 대형 사고였습니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저는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원전 건설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사고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 이번은 체르노빌에서 일어났네, 일본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미하마 원전 사고 당시에는 굉장히 놀라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의자에서 일어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사고는 ECCS(긴급원자로냉각장치)를 수동으로 움직여 원전 가동을 중지시켰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사고였습니다. ECCS라는 것은 원전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에 해당합니다. 이것마저 효과가 없었다면 끝인 것이지요. 그래서, ECCS를 가동했던 미하마 사고는 1억 수천만 명의 사람을 태운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100km의 속도로 달리다가, 브레이크도 듣지 않고, 사이드 브레이크도 듣지 않다가, 절벽에 부딪혀서 간신히 멈춘 것과 같은 대형 사고였던 겁니다.
원자로 내부의 방사능 물질을 포함한 물이 유출되어, 원자로가 냉각수 없이 가동될 일촉즉발의 위기 직전이었습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다중보호 안전책이 차차 무력화되어, 0.7초 후면 체르노빌과 같은 참사가 일어날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베테랑 전문 기술자가 와서, 자동 정지를 해야 함에도 정지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순간의 판단으로 수동 정지로 멈추어서, 세상을 끌어들일 대형 사고에는 이르지 않았던 겁니다. 일본에 있는 사람, 아니, 이 지구상의 사람 모두가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이 사고는, 2 mm 정도의 가는 배관에 붙어 있는 접촉방지 금속구-수 천 개가 넘는 세관이 진동에 의해 서로 맞닿지 않게 해주는 금속 장치-가 설계대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시공 상의 실수였습니다. 이런 것이 20년 가까이 수차례 실시한 정기 검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기 검사가 얼마나 무성의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사고입니다. 또, 들어가지 않으면 자르고, 맞지 않으면 잡아 늘이는 등의, 설계자가 설마 하고 생각했던 일을, 현장에서는 태연하게 자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사고였습니다.
작년(1995년) 12월 8일, 후쿠이현 쓰루가에 있는 동연(동력로 핵연료 재처리사업단)의 몬쥬에서 나트륨이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몬쥬 사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고, 그 전까지 번번이 사고를 일으켜서, 저는 건설 중에도 여섯 번이나 불려갔었습니다. 그것은, 소장이나 감독, 전문 기술자 등, 예전에 부하 직원이었던 사람들이 몬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저를 불렀던 겁니다. 이미 회사를 그만 둔 상태였지만, 원전은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나 몰라라 할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배관이 아무리해도 맞질 않아. 좀 와주게.’ 그래서 가보았더니, 특별 제작된 배관도 기성품인 배관도 설계상, 치수상의 오차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맞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맞지 않는지, 여러 가지 고민을 해보았지만, 점점 더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생각해보고 겨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몬쥬는 히타치, 도시바, 미쓰비시, 후지 전기 등의 여러 제조사들이 공동 제작한 시설인데, 각자 회사의 설계기준이 달랐던 것입니다.
도면을 그릴 때, 제가 일했던 히타치는 0.5mm 미만은 버림, 도시바와 미쓰비시는 0.5mm 절상, 일본원자력연구소는 0.5mm 절하였습니다. 단지 0.5mm 일지라도 백여 곳이 모이면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래서 숫자도 선도 맞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차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모두 다시 만들도록 지시했습니다. 어쨌거나 국가의 위신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돈이 들더라도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저마다 각자의 노하우(know-how), 기업비밀이라는 것이 있어서, 전체 회의를 통해서, 이 0,5mm에 대해서, 절상인가, 절하인가, 어느 쪽이든 통일하자는 식의 논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발생한 몬쥬 사고의 원인이 된 온도 센서에 있어서도, 제작사 상호간의 의견교환은 이루어지지 않았겠지요.
어느 공장의 배관에도, 그러한 온도계가 붙어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긴 온도계는 처음 보았습니다. 틀림없이 시공 당시에 위험을 감지한 사람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다른 회사의 일이니 내버려둬도 돼, 우리 회사 책임이 아니니까라고 생각해 버린 겁니다.
동연 자체가 전력회사로부터의 파견으로 이루어진 집단이지만, 제작사도 그러한 집단입니다. 이래서는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고, 일어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중대 사고에서 조차, 국가는 ‘사고’라고 하지 않습니다. 미하마 원전 사고 때처럼 ‘일(事象)이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사고 후, 곧바로 후쿠이 현 의회로 불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원전이 15기나 있습니다만, 유치를 한 것은 자민당 의원님이지요.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언제나, ‘사고가 일어난다면 당신들 책임이오. 반대했던 사람에게는 책임이 없소.’라고 말해 왔습니다. 이번에, 그 의원들에게 불려 간 것입니다. ‘이번에는 각오하고 동연과 싸우겠습니다. 어찌해야 좋을지 가르쳐 주세요.’라며 상담을 청해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한 첫마디는 ‘이것은 사고입니다, 사고. 사상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속이면 안 됩니다.’였습니다. 현의회에서 동연 측이 ‘이번의 사상은…’이라고 설명을 시작하자 ‘사고잖아요, 사고!’ 라고 의원이 호통치는 장면이, TV에 나왔습니다만, 그것도, 조용히 있었다면, 가벼운 ‘사상’으로 취급받고 마는 것입니다. 지역 사람들만이 아니라, 저희도, 동연 측이 말하는 ‘사상’이라는 가벼운 말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보통 사람에게 ‘사고’라는 것과 ‘사상’이라는 것은, 전혀 다르게 인식 됩니다. 일본이 사고를 사상 등으로 말을 바꾸는 것과 같은 미봉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원전 사고의 위기감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몬쥬에 사용되는 플루토늄은, 일본이 프랑스에게 재처리를 의뢰하여 추출한 것입니다. 재처리라는 것은, 원전에서 한번 사용한 우라늄 연료 중에 생성된 플루토늄을 뽑아내는 것으로, 플루토늄은 이런 식의 인공적인 방법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플루토늄이 몬쥬에는 약 1.4톤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는 약 8 kg의 플루토늄이 탑재되었다고 합니다만, 대체 몬쥬의 플루토늄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을까요. 게다가 플루토늄은 아무리 소량이라 해도 폐암을 유발하는 맹독 물질입니다. 반감기가 2만 4천년이나 되어, 영구적으로 방사능 물질을 방출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플루토-지옥의 왕이죠-라고 붙여진 것처럼, 플루토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플루토늄이 작년(1995년) 남태평양에서 프랑스가 자행한 핵실험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프랑스의 재처리 공장에서는, 플루토늄을 만들 때 핵병기용과 원전용을 따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플루토늄이, 이 당시의 핵실험에 사용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일본이 이 핵실험에 반대를 명확히 밝히지 않는 것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혹시, 일본 정부가 정말로 프랑스의 핵실험을 멈추고 싶었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다시 말해서, 재처리 계약을 해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프랑스의 무역액 중 두 번째로 많은 것은, 이 재처리 비용입니다. 국민들이 그런 것도 모르고, 아무리 ‘핵실험 반대, 반대’라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일 아닙니까. 게다가 유일한 피폭국가라고 하면서도, 바로 그 일본의 플루토늄이 타히티의 사람들을 피폭시키고, 아름다운 바다를 방사능으로 오염시키는 것에 다름없습니다.
전 세계가 포기를 했음에도, 일본만이 아직까지 이런 것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내려 하고 있습니다. 보통 원전에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혼합한 연료(MOX 연료)를 사용하는, 이른바 플루서멀(Plu-thermal Utilization)을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알기 쉽게 말하자면, 석유스토브로 가솔린을 태우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원전의 기본 설계는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하도록 되어있지 않습니다. 플루토늄은 핵분열의 힘이 우라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납니다. 그래서 원자폭탄의 재료로 플루토늄이 쓰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원이 없는 나라라고 해도,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요. 조속히 원전 가동을 중지하고,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일 따위도 멈추지 않는다면, 여기저기서 피폭자가 늘어날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원전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원전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1996년 2월, 2015년까지 원전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게다가 플루토늄에 대한 연구도 대통령명령으로 중단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무서운 물질에 대한 연구조차 금지시킨 것입니다.
몬쥬처럼 플루토늄을 사용하는 원전, 고속증식로마저 미국은 물론, 영국, 독일도 가동을 중단 시켰습니다. 심지어 독일은 완성된 원전을 멈추고, 리조트 파크로 만들었습니다. 세계 각국이 플루토늄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가동을 중지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도 이번 몬쥬 사고로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가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가동을 계속 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일본이 가동을 멈추지 않느냐면, 일본은 일단 결정된 일을 도중에 멈출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가 도중에 멈출 용기가 없다는 것은 대단히 무서운 것입니다. 여러분께서도 그런 예는 많이 알고 계시겠지요.
앞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무책임합니다. 일본은 원자력 발전을 시작할 때부터, 이후의 일은 아무 것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일을 해온 것입니다. 일을 시작한지 몇 십 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폐기물 하나 조차,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난제는, 지금까지 대학에 원자력 공학과가 있어서, 나름대로 학생이 있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원자력으로부터 떠나가, 도쿄대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책상에서 연구를 할 대학생마저 없어진 것입니다.
또한, 히타치와 도시바의 원자력 부분의 인원도 1/3으로 줄어, 코제너레이션 시스템(CoGeneration System ; 전기와 뜨거운 물을 동시생산하는 고효율 발전설비)인 가스 터빈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제작사에서조차, 원자력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자력국장을 역임한 시마무라 다케히사 씨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원자력담론>이라는 책에서, ‘일본정부가 원자력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은, 그저 구색을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다. 전기가 부족해서도, 그렇다고 다른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너무 무계획적으로 우라늄이나 플루토늄을 과잉 소지하게 된 것이 원인이다. 확실한 의사표현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 받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그것으로 핵병기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감시를 받게 되고, 그런 의혹을 부정하기 위해서 핵의 평화적 이용, 즉, 원전을 더 만들자는 식으로 된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만, 이것도 이 일본이라는 나라의 모습인 것입니다.
1966년, 일본 최초로 영국에서 수입한 16만 kw 급의 영업용 원자로가 이바라키 현 도카이무라에서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원전이고, 도중에 스스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지금은 이 좁은 일본에 135만 kw라는 거대한 원전을 포함하여 총 51기의 원전을 운전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폐로, 해체나 폐기물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가동을 개시한 원전입니다만,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원자로도 대량의 방사능에 노출되어 못쓸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니까, 처음 내용년수를 10년이라 하고, 10년 후에 폐로하고 해체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981년에 10년이 지난 도쿄 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제 1호기에서, 당초 생각하던 것처럼 폐로, 해체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국회에서도, 원자로는 핵반응에 견딜 수 없다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도 참여하여, 이 원자로의 폐로, 해체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하나, 매일 같이, 이것저것 검토를 했습니다만, 방사능 덩어리인 원전을 무리해서 폐로, 해체하려고 해도, 건설 당시의 몇 배의 돈이 들지, 어떤 방법으로도 대량의 피폭을 피할 수 없다는 것 등,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자로 바로 밑에서는, 정해진 허용선량을 지키려면, 겨우 10여 초 정도만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책상 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피폭이 뒤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사능 수치가 0이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방사능이 있는 한, 폐로 해체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이 할 수 없다면 로봇으로 하면 된다고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는 하고 있습니다만, 로봇이 방사능에 의해 오작동을 일으켜 현재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결국,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폐로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원전을 판매한 미국 제작사가 미국으로부터 작업자를 파견하여, 일본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대량 피폭을 당하고, 원자로 수리를 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 원전은 가동 중입니다.
처음 내용연수가 10년이라고 하던 원전이, 벌써 30년 가까이 가동되고 있습니다. 그런 원전이 11기나 됩니다. 낡아서 비틀거려도 쉬지도 않고 가동 중이어서,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또한,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 있는 무사시 공대의 원자로는 겨우 출력 100kw의 연구로지만, 이것도 방사능 누출을 일으켜 멈추어 있습니다. 연구팀은 수리에 20억 엔, 폐로 하는데 60억 엔이 소요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 대학의 연간예산에 상당하는 돈을 들여도 폐로는 할 수 없습니다. 우선, 정지해서 방사능이 없어질 때까지 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100만kw급이라는 거대한 원전이라면, 정말로 손 쓸 방법이 없는 겁니다.
왜 원전은 폐로나 해체가 어려운 것일까요. 그 이유는, 원전은 물과 증기로 운전되는 시설이기 때문에, 운전을 멈추고 그대로 방치해 두면, 바로 녹이 슬고 약해져서, 구멍이 생겨 방사능이 누출되기 때문입니다. 원전은 핵연료를 넣고 한 번이라도 운전을 하면, 방사능 덩어리가 되어, 정지 상태로 두는 것도, 폐로, 해체를 하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선진국에서 폐쇄한 원전은 많습니다. 폐로, 해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두 ‘폐쇄’시켰죠. 폐쇄라는 것은 발전을 멈추고, 핵연료를 뽑아두는 것입니다만, 여기부터가 어려운 것입니다.
방사능 투성이가 된 원전은, 발전할 때와 똑같이, 물을 주입하고 가동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의 압력으로 배관이 얇아진다거나, 부품 상태가 나빠진다거나 하기 때문에, 정검도 해서, 그러한 부분을 보수하고, 방사능이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방사능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발전할 때와 동일하게 감시, 관리를 계속해야하는 것입니다.
현재 운전 중인 것이 51기, 건설 중인 것이 3기, 전부 54기의 원전이 일본 열도를 둘러 싸고 있습니다. 운전을 계속한다면, 너무나 위험한 원전도 몇 기정도 있습니다. 그 밖에 대학이나 회사의 연구용 원자로도 있으니, 일본에는 지금, 작은 것은 100kW, 큰 것은 1350 MW, 크고 작은 것 합쳐서 76개나 되는 원자로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전력회사가, 전기를 못 만드는, 돈벌이도 되지 않는 폐쇄한 원전을 진심으로 감시를 계속할 것인지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그런데도, 더욱 신규입지나 증설을 하려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도카이 지진으로 걱정스러운 하마오카에 다섯 기째의 증설을 하려하거나, 후쿠시마에서는 축구장을 변환하여 증설하는 것도 있습니다. 신설 중인 것으로는, 니가타의 마키쵸나 미에의 아시하마, 야마구치의 가미노세키, 이시가와의 스즈, 아오모리의 오오마와 히가시도리 등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하여 2010년에는 70~80기의 원전을 가동할 생각입니다. 실제로, 나쁜 말이긴 합니다만, 이 나라는 미쳤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분명히 겪게 될 원전의 폐쇄, 이것은 정말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가까운 장래에, 폐쇄된 원전이 일본 도처에 출현할 것이다. 이것은 불안하기보다 섬뜩한 것입니다. 이런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저 하나 뿐일까요.
그리고, 원전을 운전하면 반드시 나오는 핵폐기물. 이것은 매일 배출되고 있습니다. 저레벨방사성폐기물, 이름은 저레벨이지만, 그 중에는 드럼통 옆에 다섯 시간만 있어도, 치사량에 이를 정도의 피폭을 당하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이 전국 원전에 약 80만 통이상 쌓여있습니다.
일본이 원전 가동을 시작하고부터 1969년까지는, 어느 지역의 원전에서도 핵폐기물을 드럼통에 담아서, 가까운 바다에 버렸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바라키현 도카이 원전에 있었을 때는, 작업자들은 드럼통을 트럭으로 옮겨서 배에 싣고, 치바 앞바다에 버리러 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전은 좀 이상해’라고 생각한 것은,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바다에 버린 드럼통은 1년가량 지나면 썩는다 해도, 안에 있는 방사능 쓰레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 물고기는 어떻게 되는 걸까라고 생각한 것이 시초입니다.
현재 원전 쓰레기는 아오모리의 로카쇼무라로 가져갑니다. 전부 300만 통의 드럼통을 앞으로 300년간 관리할 것이라고 합니다만, 대체 300년이나 버틸 드럼통이 있을런지, 폐기물 업자가 300년간 중간에 바뀌는 일 없이 유지될런지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또 한 가지 고준위 폐기물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뽑아내고 남은 방사성 폐기물입니다. 일본은 영국 회사에게 재처리를 의뢰하고 있습니다. 작년(1995년) 프랑스에서 28통의 고준위 폐기물이 되어 돌아 왔습니다. 이것은 걸쭉한 고준위 폐기물을 유리와 함께 굳혀서, 금속용기에 넣은 것입니다. 용기 근처에 2분간 있으면 사람이 죽을 정도의 방사능을 방출한다는, 이것을 일시적으로 아오모리의 로카쇼무라에 두어, 30년에서 50년 정도 냉각시키고, 그 후, 다른 지역으로 옮겨 땅 속에 묻을 예정이라고 하지만, 예정지는 전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원전 자체도, 국가는 가동을 멈춘 후 5년에서 10년간, 밀폐관리를 하고 나서 잘게 부수어 드럼통에 넣어, 원전의 부지 내에 묻겠다는 등의 느긋한 소리를 하고 있지만, 1기의 원전에서도 수만 톤 분량의 방사능 투성이가 된 폐자재가 배출 됩니다. 생활 쓰레기도 버릴 곳이 없는데, 대체 어쩌려는 것일까요. 어쨌든 일본 전체가 핵 쓰레기장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둘러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원전을 멈추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5년 전 쯤, 홋카이도에서 강연회를 하던 중에 ‘방사능 쓰레기는 50년, 300년 동안 감시가 이어진다’고 말했더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들고 ‘질문이 있어요. 지금 폐기물을 50년, 300년 감시할 거라고 하셨지만, 지금의 어른들이 하실 건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이후의 우리들 세대, 또 그 다음의 세대가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만, 저희는 싫어요’ 라고 외치듯 말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요.
게다가 50년, 300년이라 해도, 그 만큼만 시간이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들리겠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전이 가동을 하는 한, 끝이 없는 영원한 50년, 300년인 것입니다.
일본의 원전은 지금까지 방사능 누출이 전혀 없었다고, 몇 십 년이나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원전에 있는 높은 배기굴뚝에서는 방사능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온다기보다는, 내보내는 것입니다만, 24시간 방사능을 내보내기 때문에, 그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방사능을 맞고 피폭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여성으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23살이라는 이 여성의 편지지는 곳곳에 눈물 자욱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도쿄에서 취직을 해서 사랑을 하고, 결혼 약속을 해서, 패물까지 주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 상대측에서 혼약을 파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상대 남자는, 네게 잘못이 있는 건 아냐, 나도 너랑 같이 살고 싶어. 하지만, 부모님이 네가 후쿠이현 츠루가에서 십수년 동안 자랐다. 원전 주변에서는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백혈병에 걸린 손자 얼굴은 가여워서 볼 수가 없어. 그러니 결혼하는 건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가요.’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아가씨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원전 현지의 이야기가 아니라, 도쿄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도쿄에서요. 여러분은 원전에서 일하는 남성과 자신의 딸이, 아니면 이 여성처럼, 원전 근처에서 자란 아가씨와 자신의 아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젊은이도, 그런 사람도, 연애를 할지도 모르기에, 전혀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차별이라는 이야기는, 말을 하면 차별이 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됩니다. 원전에 반대하는 사람도, 원전은 사고나 고장이 무서울 뿐이라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차별이 발생해서 원전이 싫다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원전은 사고 없이도, 사람의 마음까지 파괴시키는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저 자신이 크나큰 충격을 받은 이야기입니다만, 홋카이도에 있는 토마리 원전에 이웃한 쿄와쵸에서, 교직원조합주최의 강연을 했던 때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 이야기는 꼭 빼놓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앞의 이야기는 전부 잊으셔도 괜찮습니다만, 이 이야기만은 부디 꼭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그 강연회는 야간 집회였지만, 학부모와 교직원이 반반정도씩, 대략 300명 정도가 오셨습니다. 그 중에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있었습니다. 원전은 지금의 어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문제이기에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지요.
강연이 대강 끝나서, 제가 질문 없습니까라고 말하니,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아이가 울면서 손을 들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밤 이 모임에 온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들이에요. 저는 그 얼굴을 보러 왔어요. 어떤 얼굴을 하고 왔는지 보려구요. 현재의 어른들, 특히 여기에 있는 어른들은 농약문제, 골프장문제, 원전문제 등에서,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운동하는 척만 할 뿐이에요. 저는 토마리 원전 바로 근처에 있는 쿄와쵸에 살면서, 24시간 피폭 당하고 있어요. 원자력 발전소 주변, 영국의 셀러필드(Sellafield ; 영국 지방도시의 작은 마을, 핵재처리 공장, 핵연료사이클공장이 집중되어 있음)에서 백혈병 아이들이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지역 원전 종사자, 주변 주민의 체내 플루토늄량이 높고, 소아백혈병발생률은 다른 지방의 10배이다)은, 책을 읽어서 알고 있어요. 저도 여자에요. 적당한 나이가 되면 결혼도 하겠죠. 저, 아이를 낳아도 되는 건가요?’ 라며, 울면서 300명이나 되는 어른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원전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면, 지금이 아니라, 왜 처음 건설될 당시에 끝까지 반대하지 않았던 거죠. 더구나, 여기 와있는 어른들은, 2호기까지 만들게 했잖아요. 가령 전기가 없어진대도, 저는 원전이 싫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때마침 토마리 원전 제 2호기가 시험가동에 들어갔던 때였습니다.
‘왜 이제 와서 이런 집회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어른이고 아이가 있다면, 목숨을 걸고 몸을 바쳐서라도 원전은 막았을 거예요’ 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원전이 생겨서, 저는 지금까지의 두 배의 방사능을 맞고 있어요. 그래도 저는 홋카이도에서 도망치지는 않을 거예요.’ 라며, 울며 하소연 했습니다.
제가 ‘그런 고민을 엄마나 선생님께 말씀드려 본 적 있니’라고 물었더니, ‘이 모임에는 선생님도 엄마도 와 있어요. 하지만 말씀드린 적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여자애들끼리는 항상 그 얘기를 하고 있어요.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을 수 없다.’ 라며..
담임선생님도, 현재 학생들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결코, 원자력 1차 피해지역이 될 8km, 10km 내의 문제가 아니라, 50km, 100km 권에서 그러한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고민을 지금의 중학생, 고등학생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항상 알아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서, 원전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체르노빌에서 원전 대참사가 일어나서, 원전은 무서운 거구나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전이 멈추면, 전기가 부족해서 곤란해’라고, 특히 도시에 거주하는 분들은 원전에서 멀리 있기에, 조금 무서워도 어쩔 수 없다라고,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 않던가요.
하지만, 그것은 국가나 전력회사가 ‘원전은 핵의 평화적 이용 방법입니다.’ ‘일본의 원전은 절대 사고를 내지 않습니다. 안전하니까 안심하십시오.’ ‘일본에는 자원이 부족하니, 원전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거금을 들여 선전한 결과입니다. 몬쥬 사고처럼, 실제는 계속 은폐하고 있습니다.
원전은 확실히 전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20년간 일하며, 이 두 눈으로 보고, 이 몸으로 체험한 것은, 원전은 일하는 사람을 피폭시키지 않고서는 절대로 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원전을 건설할 때부터, 지역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서로 마음을 돌리게 만듭니다. 건설하면 할수록, 사람들을 피폭시키고, 아무런 죄 없이도 차별을 당하여 고통 받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원전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무섭다는 것은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사고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괜찮은 건가요. 평화적 이용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저처럼, 근무자가 피폭을 당해 죽거나, 지역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한, 원전은 평화적인 이용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안전하다는 것과 안심이라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원전이 있는 한, 안심 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현재는 전기를 생산하는 것처럼 보여도, 몇 만 년씩이나 관리해야만 하는 핵폐기물에, 방대한 전기와 석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생산하고 있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필요로 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그 핵폐기물이나 폐쇄된 원전은 우리의 자손들이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원전을, 어째서 평화적 이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몇 번이고 강조했듯이, 원전은 절대로 핵의 평화적 이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침에 반드시 자신의 아이나 손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세요. 과연 이대로 일본 만이 원자력 발전소를 점점 늘려가는 현실이 괜찮을지, 사고뿐만이 아니라, 지진으로 붕괴될 위험도 있어서, 이대로라면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린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원전을 늘리면 안된다, 원전의 증설은 절대 반대이다라는 신념으로 이 일을 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가동하고 있는 원전도, 착실하게 멈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원전이 있는 한, 세계에 진정한 평화는 오지 않을 테니까요.
아름다운 지구, 우리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펭귄은 펭귄목 펭귄과다. 어릴적엔 빙하 가까운 곳에 무리를 이룬다. 펭귄은 어느정도 자라면 무리를 떠난다. 이때의 크기는 대략 100cm이다.
이떄부턴 생식이 가능하다. 펭귄은 수명떄문에 죽었다는 기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자랄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가끔 어느정도 자란 대형펭귄들이 무리를 지어 해안가에 나타나기도 한다. 대형펭귄들은 육식이며 움직이는 속도와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영국 호지슨 조류학박사는 자신이 3m가 넘는 펭귄을 인도네시아에서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 여러 생물학자들도 펭귄은 무한정으로 성장할수 있다고 언급한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에 가면 펭귄후리기라는 노래가 있다. 옛날 대형펭귄들이 배를 습격해 두려움을 담아 펭귄을 내쫒기위해 만든노래이다.
펭귄은 남극해 빙하에 살지만 1m가 넘으면 해구 근처에서 산다. 그래서 어떤 지질학자들은 지진의 원인은 엄청 큰 펭귄이 맨틀의 대류를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펭귄이 3m가 넘어가면 진화에 가까운 변화를 보인다. 날개가 손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고 백상어를 능가하는 송곳니가 생긴다. 실제로 10m넘은 펭귄은 육안으로 관측할 수 없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잠수함이 이유없이 두동강난적이 있는데 학자들은 펭귄의 소행이 유력하다고 전하고 있다.
펭귄은 똑똑하다. 아폴로 11호 승무원들에 말에따르면 달에는 천년된 펭귄 화석이 존재했다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그들이 우리보다 몇천년 앞서 달에 착륙했다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언제가 우리가 펭귄한테 지배당하는 날이 오진 않을까?

나는 당신이 ‘포켓몬스터 해킹버전 수집가’ 라고 부를만한 사람이다.
포켓몬스터 다이아몬드&제이드, 카오스 블랙 등등. 전당포, 굿윌마켓(기증받은 물건 등을 싸게 판매하는 곳), 벼룩시장 등에서 그걸 발견하는 빈도는 놀라울 정도로 잦다.
그래도 그것들은 대체로 재미있다; 비록 플레이할 수는 없다 해도 -그리고 거의가 그랬다, 그 해킹 버전들의 잦은 오역과 낮은 퀄리티는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웃기기도 했다.
나는 내가 온라인에서 플레이한 대부분의 것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게임이 하나 있었다.
나는 5년 전 벼룩시장에서 그걸 샀다. 혹시나 누군가가 알아볼 수도 있으므로 여기에 그 게임팩의 사진을 올린다.
불행하게도 나는 2년 전 이사하면서 그 게임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크린샷을 올릴 수는 없다. 미안.
게임은 레드, 블루 버전의 인트로와 같이 니드리노와 팬텀이 싸우는 익숙한 화면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Press Start(시작 버튼을 누르시오)” 화면이 달라져 있었다.
레드(주인공)가 화면에 있었지만 포켓몬들이 원래 버전과는 다르게 한마리 한마리씩 돌고 있지를 않았다. 그리고 포켓몬스터 라는 로고 아래에 “Black Version(블랙 버전)” 이라는 글귀도 쓰여 있었다.
“New Game(새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자, 오박사의 연설로 시작됐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게임은 포켓몬스터 레드 버전과 근본적으로 같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스타터(이상해씨, 파이리, 꼬부기 중 하나)를 선택하고 소지 포켓몬 목록을 보았더니 스타터 다음에 또다른 포켓몬이 하나 있었다 - “GHOST(유령)”. 그 포켓몬의 레벨은 1이었고, 실프 스코프를 얻기 전 보라 타운에서 마주친 그 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기술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 “Curse(저주)”. 나도 물론 진짜 ‘저주’라는 기술이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1세대(레드, 블루, 그린, 피카츄 버전)에선 그런 기술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는 이게 해킹 버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대 포켓몬은 유령을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 상대는 너무 무서워서 움직일 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배틀 중 “저주” 기술이 쓰였을 때, 스크린은 온통 검게 변해버렸다. 그리고 상대 포켓몬의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그 울음소리는 왜곡됐었고 원래보다 낮은 음높이로 들렸었다.
그리고 배틀 화면이 돌아오면서 상대 포켓몬은 사라져 있었다. 만약 트레이너의 포켓몬을 상대로 이 기술을 썼다면, 좌측 상단에 잔여 포켓몬 수를 나타내는 몬스터볼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있었다. 이것의 함축적인 의미는 그 포켓몬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한 건 뭐냐면 트레이너를 이기고 “레드는 이겨서 $200을 얻었다!” 라는 문구 후에 배틀 커맨드가 ‘다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만약 “Run(도망가기)”를 선택한다면, 배틀은 평소처럼 정상적으로 끝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선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주였다. 만약 저주를 선택한다면, 배틀 화면이 끝나고 필드로 돌아오면서 트레이너의 모습은 사라지게 된다.
그 상태에서 그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오면, 트레이너가 [있던] 자리는 보라 타운의 묘지에 있던 그 비석이 자리잡고 있었다.
“저주”라는 기술은 언제나 쓰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같은 유령 포켓몬한텐 통하지 않았으며, 라이벌이나 비주기같이 다시 마주쳐야 되는 트레이너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최종 결전에선 쓸 수 있었다(챔피언전, 상록시티 짐전 등). 나는 이게 이 게임의 특징 정도라고만 알았다, 저번에는 잡을 수 없었던 유령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것. 그리고 저주가 게임을 너무 쉽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나는 여행을 하는 내내 저주를 남발하고 다녔다.
사천왕을 이긴 후 게임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유령과 함께 레벨이 엄청 낮은 두 포켓몬만을 보여주는 명예의 전당을 본 후, 화면은 검게 변했다. 그리고 “수십년 후…” 라는 문구가 뜨면서 보라 타운의 모습이 비춰졌다. 한 노인이 묘비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남자가 바로 내 캐릭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노인은 평소 걸음걸이의 절반 속도로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 포켓몬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유령도 없었다, 여태까지는 그 유령은 PC에 넣어 파티에서 제외시킬 수도 없었는데.
바깥 세상은 온통 텅 비어 있었다 - 아무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저주를 썼던 트레이너의 비석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시점에선 나는 바깥 세상의 꽤나 많은 곳을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었다, 비전머신을 쓸 수 있는 포켓몬이 없다는 사실만을 제외하면. 그리고 네가 어디로 가던 간에, 보라 타운의 음악이 무한반복으로 재생되었다(이해를 돕기 위해 보라 타운 음악을 첨부합니다).
한동안 방황한 이후, 나는 디그다의 동굴로 가면 반대편에서 회색 시티로 가는 길을 막고 있던 풀베기 나무가 없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말인 즉슨 계속 가면 태초 마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태초 마을의 집에 돌아와서 내가 게임을 시작했던 바로 그 위치에 서니, 화면이 검게 변했다.
그리고 캐터피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이어서 뿔충이, 구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것이 다시 꼬렛, 거북왕의 모습으로 변할 즈음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건 이것들이 내가 ‘저주’를 썼던 포켓몬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내 라이벌의 팀까지 끝난 후, 꼬마애의 모습이 보이고 이어 벌레잡이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이 사람들은 내가 저주를 썼던 트레이너들이었다.
이 나열이 지속되는 동안, 보라 타운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그 음높이가 낮아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라이벌이 화면에 비칠 즈음, 그것은 악마의 외침에 지나지 않았다. 또다시 화면이 검어졌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갑자기 배틀 화면이 나타났다 - 내 트레이너 모습은 노인의 모습이었다,
상록 시티에서 포켓몬 잡는 법을 알려준 그 노인의 모습이랑 똑같았다. 반대편에는 유령이 나타났다, “유령이 싸움을 걸어왔다!” 라는 말과 함께.
나는 아이템도 쓸 수 없었고, 포켓몬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도망갈 수도 없었다. 단 하나의 선택지는 “FIGHT(싸우기)” 뿐이었다.
싸우기를 선택하자 바로 발버둥(모든 기술 PP 다 떨어졌을 때 나오는 기술)이 써졌다. 그것은 유령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나의 HP를 깎아먹을 뿐이었다. 유령이 공격할 차례가 되자, 유령은 “…” 라고만 할 뿐이었다.
결국 나의 HP가 한계에 다다르자 유령은 결국 저주를 썼다. 화면은 다시, 마지막으로 검게 변했다. 무슨 버튼을 누르던지 간에, 그 검은 화면에 영원히 갇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게임보이 전원을 끄는 것 뿐이었다.
다시 그 게임을 시작하자, 유일한 선택지는 “새 게임 시작” 밖에 없었다 - 게임이 세이브 파일을 지워버린 것이었다. 나는 이 해킹 버전 게임을 수없이 플레이했지만 언제나 마지막은 이 순서와 함께 끝났다.
몇번 정도는 유령을 전혀 쓰지 않고도 진행해 보았다, 비록 파티에서 제외할 수는 없었지만. 이 경우에는, 어떤 포켓몬이나 트레이너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바로 유령과의 극적인 배틀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 해킹 버전의 제작자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 해킹 버전은 널리 퍼지지 않았기 때문에 금전적 이득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이 버전은 해킹 버전 치고는 상당히 잘 만들어졌었다. 나는 제작자가 이런 메시지를 전하려고 이걸 만들지 않았나 싶다; 비록 나만 그 메시지를 받은 것 같지만. 나는 그게 뭐였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 죽음의 불가피함? 죽음의 무의미함?
아마도 그는 단순히 악의적으로 아이들 게임에 죽음과 어두운 면을 넣으려고 했던 것 같다. 어쨌던 그건 상관 없고, 이 ‘어린이’들의 게임은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고, 결국 나를 울게 만들었다.
-이글의주인공의그뒷이야기-
나는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초등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포켓몬 블루 버전을, 녀석은 포켓몬 레드 버전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같이 대전하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에 가게 되었고 연락은 뜸해졌다.
그러다 포켓몬 펄과 다이아 버전이 출시되자 우리는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고 같이 와이파이로 대전을 하는 등 다시 친해질 기미를 보였다.
어느 날 친구는 포켓몬의 옛날 버전을 다시 깨보려고 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이유를 물어보자 그는 ‘글쎄, 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될 수 도 있으니까’라고 대답했다.
나는 동참하지 않았지만, 그는 혼자서 레드 버전을 플레이했다.
그 후 나는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3주 후, 그의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인은 갑작스러운 발작이었다. 그의 룸메이트가 방에서 헤드폰을 낀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신고했으나 이미 늦었었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서 나는 그 룸메이트에게 내 친구가 최근 라벤더 타운과 그 배경음악에 이상할 만큼 집착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친구는 원래 음악 엔지니어링이 전공이었고, 작은 소리도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는 민감한 녀석이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건 당연하지만, 당시의 집착은 정도가 심했었다고 한다.
룸메이트에 따르면, 그는 라벤더 타운에 다다르자마자 배경음악을 추출해내 이것저것 실험을 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그는 포켓몬 그린의 초기 특판 버전의 라벤더 타운 무수정 음원을 얻었다고 자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작업을 하면서(앞서 말한 무수정 음원이라고 집어 말하지는 않았지만)’이 음악의 주파들은 다른 것들과 달라; 뭔가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조합돼. 그런데 무언가가 부족해. 무언가 추가되어야 할 요소가 있는데, 아마 게임보이에서는 재생이 불가능했을거야. 그때는 기술이 제한적이었으니까.’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그의 노트북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최근 문서’에 들어가보니 나와 찍은 사진 몇 장과 함께 ‘Lavender.wav’라는 파일이 가장 위에 있었다. 나는 슬픔을 느끼며 모든 파일을 내 하드에 복사했다.
그리고 이 글을 올리기 몇주 전, 갑자기 친구의 죽음의 원인을 좀 더 명확하게 규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Lavender.wav 오디오 파일의 Properties dialogue box(*음원에 대해 무언가 메모해 놓는 곳인 것 같습니다)에 들어가 보았다. 메모에는 ‘Binaural Tone(이해하시려면 P.S.1을 읽으세요),필요한 주파수 추가. 나는 Lavender Town의 배경음악이 왜 슬프게 들리는지 알았고, 사라진 부분에 대해서도 알았다.’ 라고 적혀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플레이 횟수였다.
한번.
나는 온라인 상의 지인에게 부탁해 오디오 파일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받았고, 위의 비디오는 이것을 사용해 Lavender.wav를 분석하는 것을 녹화한 것이다. 물론 스피커를 꺼놓은 채로 했고, 이 비디오서 나오는 음악도 Lavender.wav가 아니라 일반적인 Lavender town extended version의 음악을 덮어씌운 것이다. 나는 내 친구 Anthony의 죽음에 아직까지도 매우 불편함을 느끼고 있고, 저 음원도 결코 들어보지 않을 것이다.
<어느 여인의 죽음>
본 이야기는 1981년 서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부터 시작된다.
한국 현대사에 1981년은 많은 의미를 가진 시기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1981년도 백 원짜리 동전도 전무후무할까?)
이 어수선한 시기에 지금도 믿기 힘든 사건이 하나 있어 회상해 본다.
혹자는 거짓말, 또는 과장이라는 말로 애써 외면할 지 모르겠지만 나의 두 눈은 분명히 확인했고,
또한 30년 시간이 흐름에도 기억은 생생한 것이다. 너무 충격적이었기에….
외제차(모델명은 기억 안 남)와 대중교통 버스가 지금의 전농초등학교(구 동대문여상과 구 경찰병원 사이) 앞에서 정면 충돌한 사고가 발생했다.
버스는 운전사를 포함해 경미한 부상을 입은 손님 몇 명만 있었고, 외제차에 혼자 탑승했던 30대 한 여인은 즉사했다.
그런데 이 사고는 재빠르게 수사가 진행됐는데, 가장 놀라운 것은 사고 당일 바로 국과수에 부검이 요청된 것이다.
신원 확인도 안한 채 위에서부터 긴급한 지시가 떨어져 신원 확인 없이 바로 부검에 들어갔는데, 지금 생각하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이 사건에서는 시작부터 발생한 것이다.
직접사망 원인은 충돌로 인해 핸들이 파손되면서 운전자 가슴에 정면으로 박혔고, 갈비뼈(몇 번 째 갈비뼈인지 기억이 안 남)가 부서지면서 심장에 강한 충격으로 준, 심장 쇼크사로 판명 됐다.
그 당시 국과수 의견은 보통 교통사고로 사망되는 가장 보편적인 내용이어서 다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다만 왜 신원도 파악되지 않은 사망자를 빠른 시간에 부검을 했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30대 이 여인은 미모의 여성은 아니지만 그리 밉지 않은 긴 머리에 피골이 상접 해 보일 정도로 깡마른 체형의 여자였다.
소지품에 대한 정보는 없기에 본 이야기에서는 생략하고, 문제는 부검 후 사망 결과를 확정 지은 후에 벌어졌다.
심장을 절개하고 부서진 갈비뼈와 심장 상태를 파악한 후인데, 별안간 이 여자가 수술대 위에서 벌떡 일어선 것이다.
그 당시 부검에 참여했던 이분 이외에 3 사람은 아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1981년도가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이런 믿기 어려운 광경에 네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섰고,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현대 의학으로 심장은 멈췄고, 분명히 여인은 사망했다.
아니 이미 흉부를 절개해 모든 내장을 들어낸 상태인데 이럴 수 있을까?
아니 이건 꿈일 것이다. 악몽 말이다. 그러나 수술대 위에 벌떡 일어난 이 여자는 네 사람을 하나하나 둘러보기까지 했다.
아직도 생생한 그 얼굴. 목각 인형을 깎아 놓은 듯한 뼈 구조가 적나라하게 보였고,
얼굴에 비해 큰 눈동자는 죽은 동태 눈알처럼 초점 없이 이리저리 회전운동을 반복했다.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여자의 행동이었다.
자신의 내부 기관으로 손가락을 넣더니 무언가를 찾듯 이러저리 들쑤시고 있었다. 가슴은 절개된 체 표피와 갈비뼈는 고스란히 노출된 상태에 (다행히 얼굴은 말끔하게 알코올로 소독돼 오히려 깨끗해 보였다)
손가락은 내부 기관을 헤집고 있었다.
부검실에는 단 하나의 소리만 들려왔다.
‘푹퍽푹퍽’
뭔가 질퍽거리는 진흙 속에 나무를 넣어 휘젓는 소리,
그 질퍽거리는 소리는 부검실 전 공간을 뒤흔들었다. 여자는 마음대로 잘 안됐는지 두 다리를 더 벌린 후 후비기 시작했다.
1분은 흘렀을까? 여자는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며 결국 무언가를 끄집어 내고, 기절했다.
국과수 위원들은 바로 이 믿을 수 없는 사태를 수습하고 보고를 서둘렀다. 이 여성이 꺼낸 그것.
핏덩어리인지 뭔지 모를 검붉은 덩어리 같은 것이 여자의 손에 쥐어졌고, 숨도 못셨던 네 사람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그 여인에게 다가갔다.
‘이건 꿈이다.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어. 너무 요새 무리를 한거야. 좀 쉬면서 일해야 하는데…’
기억이 정확하다면 사이즈는 보통 지우개 만했고,
재질은 금을 녹여 만든 ‘함(상자)’이었다. 보통 담배 크기의 4분의 1만한 크기로 그건 분명 순금으로 만든 것이었다.
여자의 손에서 그 함을 집어들고 보니 말 그대로 직육면체의 덩어리에 불과했고, 어디서 지시가 떨어졌는 지 그 여자는 몇 분 안돼 바로 어디론가 옮겨졌고, 그것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소문에 의하면 그 함을 녹여보니 다이아몬드가 있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35년간 이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절대 잊지 못할 일을 겪었고, 지금도 그 여인의 눈동자와 그것을 끄집어낼 때 났던 소리마저도 생생하다.
<치악산 18 토막 연쇄 살인사건>
1980년 시국이 어수선할 때 우리나라의 명산 중의 하나인 치악산에 이상한 사건이 생겼다. 40대 한 남성이 등산을 하던 것으로 추정된 모습으로 토막 살해 당한 것이다. 이당시 토막살인이라는 것이 거의 드문 일이고, 너무 시체가 잔혹해 언론에 공개되지 못한 채 비밀리에 수사가 시작됐다.
국과수에 시체가 옮겨지고 살해 도구를 찾는데 혈안이 됐지만, 결국 적당한 도구를 예상하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토막난 면이 너무나 부드러웠기 때문이다. SF영화에서 나오는 레이저 빔 같은 것이 아주 부드럽게 절단된 것처럼 토막된 면의 정교함과 부드러움은 그당시 국과수에서는 예측 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라는 점. 첫 시체가 발견된 이후 7일에 한 번 꼴로 치악산 근처에 똑같이 18도막 난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결국 1달 동안 10구의 시체가 발견됐고, 이 시체들 모두 한치의 오차도 없이 18도막을 부위별로 정확하게 나눈 것이다. 노련한 국과수 위원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이렇게 정확하게 토막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누가 이런 미♡ 짓을 했느냐보다 무엇으로 절단했느냐가 더 화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단면을 보일 도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외계인이라도 와서 이런 건가?”
테레사 수녀가 유명해진 계기는 언론인 맬컴 머거리지때문이다.
무신론자였던그가 기독교인으로 돌아선계기가 테레사때문이었다는데 테레사는 어떤인물 이었을까?
지금껏 알려진것은 사랑의 선교회를 이끌면서 (수녀4천에 일반신도 4만여명존재)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봉사활동한 인물로 알려진게 전부다.
특이한 경력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정도?
그녀에관해 쓰여진글들은 많으나 대부분 종교인에의해 쓰여진 광고글이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것은 코닥필름의 신제품에관한 가짜기적(신성한 빛)논란이 점화되면서 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을 전공한 선배에게서 사기극이라는 결론에대한 확답을 받았다. 사진은 초라한 외부와달리 누추하고 어두운곳에서 은은한 빛이 나는데 그것이 신성한 빛이라는 맬컴의 주장과달리 역광을 강조한 코닥의 신제품은 그 연출이 가능하다는 사진학 전공선배의 말로 진실여부를 가늠한다.
많은 사람들이 테레사를 사진으로 접한 존로드(msia메시아라 읽는다.)는 초서급의 종교사기꾼이다.
이자는 예수보다 영적으로 우세하다고 주장하면서 “성실상”이라는 명목으로 1만달러의 상금으로 테레사를 유혹했다.
그리고 홍보용으로 테레사와 찍은사진의 뒤편에 켈카타빈민촌의 아이들을 삽입하고 빈민촌에서 찍은것인냥 광고했다. 이것이 언론까지 흘러들어 세계에 알려졌다. 가짜사진임을 알면서도 테레사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티의 장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인류최초의 종신대통령이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자는 아들 장클로드 뒤발리에에게 왕권을 양도했다.
그 자가 미국에의해 왕권을 뺐기고 해외로 도피행각을 하기까지의 세월동안 아이티국민들은 폭동에 시달렸다.
테레사는 이자의 마누라의발에 키스하고 한없는 존경을 보냈다. 그 사진도 세계에 광고됐다. 그외의 사진들도 많은 부분이 매리언 배리 전 워싱턴시 시장(미국내 최악의 도시로 만들고 학교기도시간 의무화를 도입한 장본인) 찰스 키팅 (희대의 금융사기꾼 훗날 감방에가자 테레사는 선처를 호소하는 글을 법원에 보냈다.
자신에게 100만달러 기부자라는 이유로 )같은 사기꾼들과 함께였었다. 흑인만의 교회를 세우고 미성년성추행으로 고소당한 흑인목사 조지 스톨링스도 빼버리기힘든 인물이다.
테레사는 평소 인터뷰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녀가 가고나서 왜 그토록 “낙태금지”에 목 매달았는지 알것만 같다.
그녀는 노벨평화상을 받는 그 순간에도 “낙태”에 관해서 말했다. 노밸평화상을 받기위해 자신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럴 수 밖에….한게 없으니.
전세계의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테레사가 한짓을 살펴보자.
테레사는 사랑의 선교회를 이끌면서 얼마만큼의 기부를 받았을까? 모르긴해도 수백억달러에 달할것이라는 재정담당자의 발언으로 미루어 어마어마한 액수라고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항상 수건한쪽에 찬물 그리고 죽기직전에야 겨우공급해줬던 페니실린 따위가 전부였었다고 현장사람들은 전한다. 그 곳을 자원봉사갔던 의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모든처방은 의사가 아니라 수녀들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의학적 지식을 지녔던 수녀도 있었으나 주사기를 찬물에 행구고 다른아이에게 다시주사를 놓는 행위를 보고서 끓는물에라도 소독하고 재주사를 놓아달라는 의사의 말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한다.
많은 의사들이 자원봉사를 갔으나 그냥돌아왔다. 의사는 그곳에서 할일이 없었다.
기부받은 그 많은 돈들은 도대체 어디에 쓰여졌을까? 현장에서 함께했던 수녀들의 증언에 따르면 테레사는 아이들에게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한다.
“가난함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움에 취해서” 그 아이들이 계속 가난한채로 내버려둬야 테레사에게 최선이 아니었을까? 해서 그 많은 기부액을 뒤로하고 오로지 수녀들의 손에 수건하나 찬물한바가지를 고작 지급한것 이었을까?
35년간 켈카타에서 수백억달러를 기부받고 아이들은 제대로된 진료한번 못받고 죽어가는데도 형편은 항상 같았다. 퇴거를 원해도 놓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를 재물로 삼은 이유를 알것만 같다.
그리고 그녀는 그 자신이 심장질환 및 노환으로 누웠을때 서양에서 가장 값비싼 병원에서 최고 비싼방에 머물며 진료를 받았다.
그 시각에도 그녀의 아이들은 그 흔한 페니실린도 못맞고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는데…(이것은 전세계의 티비에 방영됬다.)
테레사는 천주교에 철저히 이용당한 바보였거나, 전철에서 “예천불지”를 외치는 돌아버린 종교인이었거나, 자신이 성경속의 마리아인냥 착각한 과대망상증 환자였거나 (실제 인터뷰내용에 자신과 신이 동격이라는식의 발언이 많이 목격된다) 셋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 많은 기부액들은 전부 어디로 흘러들어갔을까?
개인적으론 세번째 가정이 가장 가깝다 생각된다.
그녀 자신이 악했다기 보다는 전세계의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삶이 꽃혀있는데 그 가난에서 벗어나서 의사들의 진료와 빈민구제를 받는다면 자신은 더이상 마리아가 아니라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았을까?
해서 그녀에게 아이들은 병이 나아서는 안될존재로 각인되었을 수도, 좀 더 확대하면 그들의 형편이 나아지면 더 이상 기부금이 도달하지 않을까 저어한 교단측의 간교함이 있었을 수도…
*진실 여부는 테레사 본인만이 알 일이지만 “신성한 빛”은 있었을 지라도 그곳의 아이들중 기적을 본 아이가 있었단 기사를 본적이 없다. 교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정작 필요한곳엔 없었다.
그녀자신은 신실했을지라도 아이들에게 필요한것은 “기도의 영험함”이 아니라 의사들의 손길이었는데 그것을 차단한 객관적 사실이 있고, 기부액과 각종상금으로 받은 엄청난 액수의 돈들이 아이들에게는 극히 일부만 제공되었다. 대부분의 돈들은 선교활동에 쓰여졌다. 그것은 아이들의 돈이었어야 마땅하다. 그녀는 그돈을 횡령했다.
그녀는 아픈아이에게 필요한것은 의사의 손길이라는걸 모르고 무당의 푸닥거리로 아이들을 고치려한 무지한 엄마였다는 것만이 객관적 사실이다.